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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의 역사

 

현대

 

 

스톤월 항쟁

 

1969년, 뉴욕의 동성애자 밀집촌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발생한 스톤월 항쟁은 2천여 명의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며 동성애자에 대한 처우 개선을 요구한 사건이다. 향후 단순한 항쟁이 아닌 20세기 동성애자에 대한 제도적·사회적인 억압과 차별에 항의하여 일어난 인권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1969년 6월 28일 오전 1시 20분, 10여 명의 뉴욕 시 경찰이 그리니치 빌리지의 크리스토퍼 가에 위치한 주점 스톤월 인을 급습했다. 불법적 주류 유통 단속을 명분삼아, 당시 위법으로 처벌 대상이었던 동성애자를 체포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주점 내부에는 200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단속으로 인해 탈출을 시도하는 자가 속출하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여경은 여성 복장을 한 사람들을 화장실로 데려가 여장 남자를 체포했는데, 상황을 지켜보던 목격자들과 현장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이에 강력히 항의하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이날 아침부터 마찰은 항쟁으로 발전했다. 뉴욕 시는 진압을 위해 400여 명의 전투경찰 등 공권력을 투입했고, 인근에 거주하는 일반 시민에게도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면서 시위 군중은 점차 늘었다. 항쟁이 소강 상태로 접어든 6월 30일 이후에도, 스톤월 항쟁은 미국 전체의 동성애 집단에 강력한 영향을 주며 각지에서 동성애자 인권 운동이 전개된다.

 

 

 

 

 

 

 

 

 

 

 

 

 

 

 

 

 

 

 

 

 

 

 

 

 

 

 

 

 

 

 

 

 

 

 

 

 

 

 

 

 

 

 

 

 

 

 

 

 

LGBT 운동

 

동성애 운동의 전국화는 차별 철폐로 이어졌다. 1969년 미국 코네티컷 주가 연방에서 두 번째로 동성애자 차별 조항을 폐기하고, 1972년에는 오하이오 주와 하와이 주가 뒤를 잇는 등, 많은 주가 여기에 동참한다. 2003년 6월, 미국 연방 대법원은 로렌스 대 텍사스 사건에서 "성인 사이에 합의한 비-상업적이고 사적인 동성 간 성행위를 주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하는데 타당한 이유가 부족하므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한다. 이에 따라 텍사스 등 2003년까지 동성애 처벌을 고수하던 13개 주의 소도미 법 모두가 자동으로 위헌에 해당하게 되었으며, 즉시 효력을 상실하였다.

LGBT라는 단어의 어원인 LGB는 1980년대부터 '게이 커뮤니티'를 대체할 용어로 영미권 국가들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993년, 대한민국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모임인 초동회가 결성되었으나, 1994년 초동회에서 남성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와 여성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끼리끼리'로 분리되었다. PC 통신 내 동성애자 모임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으며, 1995년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각 대학을 중심으로 동성애자 모임들을 조직하기 시작하여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여성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 1997년 첫 서울퀴어영화제와 대규모 성소수자 집회가 열렸다. 현재의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전신인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이 결성되었다.

 

에이즈 대유행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의 기원과 첫 감염 경로는 불분명하나, 미국으로 처음 유입된 것은 60년대 후반 70년대 초 이다.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1)는 중앙아프리카, 특히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아이티를 통해 미국에 도달했다고 믿어진다. 1966년경 콩코 민주 공화국에서 일을 했던 불특정인 혹은 불특정 다수의 아이티인들로 인해 바이러스가 유입되었다고 추정된다.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에이즈)는 잠복기가 매우 길기 때문에 빨리 발견되지 못하였고 전세계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에이즈 대유행은 1981년 6월 5일 미국의 질병 통제 예방센터가 로스앤젤레스의 동성애자 남성 5명에게서 발견한 주폐포자충 폐렴이 처음 보고되면서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18개월 동안 여러 도시의 건강한 남성들에게서 주폐포자충 폐렴과 함께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카포시 육종, 임파선염과 같은 다른 병들의 증상도 발견되었다. 1982년 6월 한 병인학 연구원은 캘리포니아 남부의 동성애자 남성들에게서 주로 나타난 사례들을 바탕으로 이 병이 성병일 것이라 제안하였으며, 이 증후군은 게이 면역 결핍증이란 이름의 GRID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병의 원인 및 정체에 대한 불분명함, 전세계적인 유행, 높은 치사율 등과 함께 국제 사회 전반에 병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었고, 특히 미국 등에서 에이즈는 동성애자 남성들만 걸리는 병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었다.

하지만 곧 질병 통제 예방센터는 감염자 절반 이상이 동성애자 남성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이 병은 다수의 혈우병환자, 이성애자인 약물중독자,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에게서도 발견되었으며, 주요 감염자군의 앞글자들을 따 4H병이라 불리었다. 1982년 8월이 되서아 질병 통제 예방 센터는 해당 병을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 즉 AIDS(에이즈)라 공식적으로 명명한다.

 

법적 권리 획득

 

1977년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시의원으로 당선된 하비 밀크는 동성애자의 권리 조례를 제정하는 등 동성애자의 권리 옹호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미국의 공직에 선출된 최초의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다.

같은 해 캐나다의 퀘벡 주가 세계 최초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근거로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입법하였다. 이후 많은 연방제 국가에서 주(州)단위로 차별 금지법이 입안되었다. 국가단위로는 프랑스가 최초로 1985년 성적 지향등을 근거로 고용 등에 있어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이후 100여개 국가가 비슷한 법들을 도입하였다.

대한민국은 2007년부터 차별금지법을 입법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보수주의 기독교계의 반대로 인해 빈번이 실패하였다. 현재 2012년에 발의된 법안이 대한민국 국회에 계류 중이다.

2011년에 국제 연합 인권 이사회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범죄와 차별, 성소수자 처벌과 성소수자 권리 증익을 도모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반기문 국제 연합 사무총장 또한 국제 사회의 동성애 처벌 폐지와 성소수자 차별 금지, 성소수자 권리 증익에 힘써줄 것을 촉구했다.

LGBT 운동과 더불어 20세기 후반부터 생물학적, 사회적으로 동일한 성별을 가진 두 사람 사이에 법률상, 사회상으로 이루어지는 결합을 허용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이성애자 부부와 완벽하게 동일한 권리가 주어지지는 않지만 일부 세제 혜택, 건강 보험, 상속권, 병원에서의 면회권 등이 보장되는 시민결합 혹은 그와 유사한 제도가 1989년 덴마크를 시작으로 노르웨이, 스웨덴 등 여러 나라에 도입되었다.

완전한 권리를 지닌 동성 결혼 제도는 2001년 4월 1일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허용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를 이어 벨기에(2003년), 스페인, 캐나다(2005년) 등의 나라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었다. 2015년 1월 기준으로 16개 나라에서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었으며, 30개 이상의 국가에서 시민 결합 및 사실혼 등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자긍심 행진

 

스톤월 항쟁의 1주년을 맞은 1970년 6월 28일, 크리스토퍼 거리 해방의 날은 크리스토퍼 거리에 있는 의회와 센트럴 파크를 뒤덮은 미국 역사 최초의 퀴어퍼레이드가 열린 날로 기록되었다. 동성애자 자긍심 행진이 시작되기 두 시간 전에야 허가가 내려졌지만, 행진 참가자들은 구경꾼들에게 방해를 거의 받지 않았다. 뉴욕 타임즈는 행진 참가자들이 15개 블록의 길을 완전히 점령했다고 1면에 보도했다.[76] 빌리지 보이스의 보도는 긍정적이었다. ‘일 년 전 경찰들의 스톤월 인 급습에서 자라난 진보적인 저항’이라고 보도했다.

동성애자 자긍심 행진은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에서도 동시에 개최되었다. 그 다음 해에는 보스턴, 댈러스, 밀워키, 런던, 파리, 서베를린 그리고 스톡홀름에서 개최되었다. 1972년에 이르러서는 그 외에도 애틀랜타, 버펄로, 디트로이트, 워싱턴 D.C., 마이애미,필라델피아,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도 행진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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